분명히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시작을 못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내가 왜 이럴까” 자책하게 됩니다.
일머리가 없다거나,
깜빡깜빡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뇌의 특정 영역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인 ADHD는 어린 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런지,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전두엽이 하는 일, 그리고 못 하게 되면 벌어지는 일
전두엽은 뇌의 가장 앞쪽에 있습니다.
이곳이 하는 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실행 기능’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불필요한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입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해주는
사령탑 같은 곳이죠.
그런데 이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해야 할 일이 여러 개일 때
뭘 먼저 해야 할지 모릅니다.
중요한 일을 미루다가 급한 일에 치입니다.
대화 중에 딴생각이 나서
상대방 말을 놓칩니다.
이게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뇌 기능의 문제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합니다.
도파민은 ‘보상 회로’를 담당하는데,
쉽게 말해 “이걸 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동기를 만들어주는 물질입니다.
ADHD가 있으면
이 도파민 회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인 걸 알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시작 자체가 어렵습니다.
왜 어른이 되어서야 문제가 되는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성인이 되어서 갑자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뇌가 갑자기 나빠진 게 아닙니다.
환경이 바뀐 겁니다.
학창 시절에는 시간표가 정해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부모님이 일정을 관리해줍니다.
구조화된 환경 안에서는
전두엽의 약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 달라집니다.
스스로 일정을 짜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누가 챙겨주지 않습니다.
갑자기 전두엽에 과부하가 걸리는 겁니다.
게다가 성인의 삶은
‘작업 기억’을 많이 요구합니다.
작업 기억이란 방금 들은 정보를
잠시 머릿속에 붙잡아두면서
다른 작업을 하는 능력입니다.
회의 중에 상사가 한 말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다음 발언을 준비해야 합니다.
전화 통화하면서 메모를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ADHD에게는 몹시 힘듭니다.
실패가 쌓이면 뇌도 포기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전두엽 기능 저하로 일 처리가 안 되면,
실수가 반복됩니다.
실수가 반복되면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합니다.
그런데 스트레스 호르몬은
전두엽 기능을 더 떨어뜨립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보상 회로입니다.
도파민 회로가 약한 상태에서
자꾸 실패를 경험하면,
뇌는 “노력해봤자 소용없다”고 학습합니다.
그래서 점점 새로운 시도를 피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 앞에서 시작도 전에 포기합니다.
대신 즉각적인 보상이 있는 것,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나 간식 같은 것에 끌립니다.
이건 게으름이 아닙니다.
뇌가 에너지를 아끼려는 생존 전략입니다.
문제는 이런 회피 행동이
또다시 실패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면
결국 더 큰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또 자책합니다.
전두엽-도파민-정서가
서로를 끌어내리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기존에 ADHD를 다룰 때
주의력만 보거나, 충동성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두엽의 실행 기능,
도파민 회로의 동기 부여,
그리고 반복된 실패로 인한
정서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한 부분만 건드리면
나머지 두 요소가 다시 끌어당깁니다.
일머리가 없는 게 아니라, 뇌가 다르게 작동하는 것
성인 ADHD의 핵심은 의지력 부족이 아닙니다.
뇌의 작동 방식이 다른 겁니다.
전두엽이 계획과 실행을 담당하는데
이 부분이 약합니다.
도파민 회로가 동기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 결과 시작이 어렵고,
중간에 놓치고, 마무리가 흐지부지됩니다.
여기에 반복된 실패 경험이 더해지면,
뇌는 점점 회피 모드로 전환됩니다.
“난 원래 이래”, “일머리가 없어”라고
자책하기 전에,
한 번쯤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뇌가 다르게 작동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책 대신 이해가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