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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보행장애 걸음이 느려지고 자꾸 넘어질 때

변성범 원장
변성범 원장
한의학박사 · 한방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원장 소개 →

파킨슨병에서 가장 일상을 위협하는 증상은 떨림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실제로 가장 힘들어하는 건 바로 걸음입니다.

발이 바닥에 붙는 느낌, 첫 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는 경험,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 앞으로 쏠리는 느낌.
이런 증상들은 단순히 다리 근육이 약해진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보행장애는 파킨슨병에서 낙상, 골절,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경로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증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걸음이 왜 이렇게 흐트러지는지,
그리고 왜 단순히 걷는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생기는지
그 연결고리를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뇌가 걸음을 잃어가는 방식

파킨슨병은 뇌 속 도파민을 만드는 세포가 서서히 줄어드는 질환입니다.
도파민은 단순히 기분과 관련된 물질이 아닙니다.

도파민은 움직임을 시작하고, 속도를 조절하고, 동작 사이의 타이밍을 맞추는 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이 물질이 줄어들면 뇌의 기저핵이라는 구조물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기저핵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걷게 해주는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하죠.

그런데 이 자동 프로그램이 망가지면
걷는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그 결과, 보폭은 점점 짧아지고 걸음은 느려집니다.

이것이 파킨슨 특유의 소보증, 즉 종종걸음입니다.

더 나아가 특정 상황에서는 발이 완전히 멈춰버리는 보행동결이 나타납니다.
좁은 공간을 지날 때, 방향을 바꿀 때, 문턱을 넘을 때 주로 발생합니다.
보행동결은 뇌가 복잡한 상황에서 다음 동작 명령을 내리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순간 무리하게 걸으려 하면 오히려 앞으로 넘어지기 쉽습니다.

넘어지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걸음이 느려진다고 해서 반드시 넘어지는 건 아닙니다.
파킨슨 환자에서 낙상이 많은 데는 자세불안정이라는 별개의 문제가 있습니다.

자세불안정은 도파민 부족뿐만 아니라
자세를 바로잡는 반사 반응 자체가 약해지면서 생깁니다.

우리 몸은 균형을 잃으면 0.1~0.2초 이내에 자동으로 자세를 교정하는 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킨슨병이 진행되면 이 반사가 느려지거나 아예 작동하지 않습니다.

뒤로 밀렸을 때 앞으로 내딛어야 하는 발이 제때 나가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는 몸통의 반응도 늦어집니다.
결국 작은 자극에도 쉽게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자세불안정은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도파민 약이 떨림이나 경직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지만,
자세 반사 회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약물만으로 대응하면 낙상 위험은 여전히 남습니다.

더 복잡한 건 보행동결과 자세불안정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발이 갑자기 굳을 때 몸통은 앞으로 쏠리는데,
자세 반사가 약하면 그 순간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두 문제가 동시에 작동할 때 낙상 위험은 단순히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훨씬 크게 증폭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파킨슨 환자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걷는 이중과제 상황에서 보행이 급격히 나빠집니다.
전화를 받으면서 걷거나, 대화를 하면서 걸음을 옮기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데 파킨슨 환자에게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됩니다.

이는 의식적으로 걸음을 통제해야 하는 상태에서
뇌의 자원이 두 방향으로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파킨슨 보행장애는 근력의 문제가 아닌, 뇌의 자원 배분과 자동화 회로의 문제입니다.

걷는 연습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파킨슨 보행장애 재활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것이 걷기 운동입니다.
하지만 그냥 더 많이 걷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뇌가 걸음을 자동으로 만드는 회로가 무너진 상태에서는, 걷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외부 리듬을 이용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메트로놈 소리나 음악 박자에 맞춰 걷도록 하면
뇌의 다른 경로를 통해 걸음을 유도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청각 신호가 기저핵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운동 피질로 전달되는 경로를 활용하는 겁니다.

보행동결이 왔을 때는 억지로 걸으려는 것이 오히려 위험합니다.
잠깐 멈추고, 발뒤꿈치를 먼저 내딛는 동작을 의식적으로 하거나
발 앞에 선이나 물체가 있다고 상상하고 그것을 넘는 시각적 상상을 활용하는 방식이
보행동결 대응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자세불안정 쪽에서는 단순한 걷기보다
균형 훈련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한 발 서기, 무게 이동 훈련, 방향 전환 연습처럼
자세 반사를 의식적으로 반복 훈련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훈련은 혼자 하기 어렵고
낙상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한 환경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결국 보행장애 대응의 핵심은
어떻게 걷느냐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뇌가 잃어버린 자동화 회로를 완전히 되살리기는 어렵지만,
다른 경로와 의식적 전략을 통해 기능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파킨슨 보행장애는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걷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걸음이 느려지고 있다면, 그리고 자꾸 넘어진다면
그 두 문제가 서로 다른 기전에서 오고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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