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 찍었는데 아무 이상 없대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안도보다 황당함이 먼저 왔을 겁니다.
분명히 눈 뒤가 터질 것 같고,
빛만 봐도 구역질이 나고,
하루 이틀씩 누워 있어야 할 만큼 아픈데,
영상에는 아무것도 안 찍혔다는 거죠.
이건 ‘이상 없음’이 아닙니다.
MRI가 보여주는 건 구조적 이상,
즉 종양, 출혈, 경색처럼 뇌의 형태가 바뀐 것들입니다.
편두통은 그런 병이 아닙니다.
뇌의 구조가 아니라 뇌가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영상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면 편두통은 도대체 어떤 원인으로,
왜 그렇게 심하게 아픈 걸까요.
뇌 안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폭풍
편두통 발작이 시작될 때,
뇌 안에서는 아주 특이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뒤통수 쪽 뇌 표면에서 신경세포들이
갑자기 과하게 흥분한 뒤
급격하게 억제 상태로 전환됩니다.
이 흥분과 억제의 파도가
뇌 표면을 시속 3~5밀리미터 속도로 천천히 퍼져 나가는데,
이를 피질 확산성 억제라고 합니다.
편두통 전조 증상, 즉 번쩍이는 빛이나 시야 이상은
바로 이 파도가 시각 피질을 훑고 지나갈 때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뇌 안의 칼륨, 수소이온, 글루타메이트 같은
신경화학물질들이 대량으로 바깥으로 쏟아진다는 겁니다.
이 물질들이 주변 뇌막 혈관 주위의 신경 말단을 자극합니다.
뇌막 혈관을 감싸고 있는 삼차신경의 말단이
이 자극에 반응하면서
통증 신호를 뇌간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시상으로 올려 보내게 됩니다.
통증이 시작되는 건 바로 이 지점,
삼차신경혈관계가 활성화되는 순간입니다.
왜 한 곳만 보면 해결되지 않는가
피질 확산성 억제가 삼차신경을 자극하고,
삼차신경이 활성화되면 혈관 주위에
염증성 물질이 분비됩니다.
그러면 혈관이 팽창하고,
팽창된 혈관이 다시 삼차신경을 더 강하게 자극합니다.
이 두 흐름이 서로를 키우면서
통증이 수 시간, 길게는 72시간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서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편두통이 자주 발작을 반복하면
뇌간에 있는 통증 조절 중추인 삼차신경핵이
점점 예민해집니다.
이 과민화가 진행되면
원래 통증이 아닌 자극, 예를 들어 빛, 소리, 냄새조차
극심한 고통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즉, 편두통은 발작이 반복될수록
뇌 자체가 통증에 더 취약한 상태로 바뀌어 간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두통을 볼 때
“왜 지금 아픈가”만 보면 안 됩니다.
왜 이 뇌는 피질 확산성 억제가 쉽게 유발되는 상태가 됐는가,
왜 삼차신경이 이 정도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는가,
그리고 왜 통증 조절 중추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된 상태라는 걸 봐야 합니다.
수면이 불규칙하면 뇌 흥분성이 높아집니다.
뇌 흥분성이 높아지면 피질 확산성 억제가
더 쉽게, 더 자주 일어납니다.
자주 일어날수록 삼차신경핵은 더 예민해지고,
더 예민해진 뇌는 또 작은 자극에도 무너집니다.
MRI에는 아무것도 안 나왔지만,
이 흐름 안에서는 아주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정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정상”이라는 말이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MRI가 정상이라는 건 뇌의 구조물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고,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편두통의 고통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이고, 조절의 문제입니다.
피질 흥분성, 삼차신경 감수성, 뇌간의 통증 조절력,
이 세 가지가 함께 흔들릴 때
MRI에는 아무것도 안 잡히는 극심한 통증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픈 게 맞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 통증은 절대 꾀병이 아닙니다.
뇌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
영상에 잡히지 않을 뿐이지,
분명히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