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저리고 타는 듯한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갑니다.
약을 처방받고 먹습니다.
그런데 통증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 약을 먹어도 말초신경병증의 통증은 잘 가라앉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통증이 어디서 만들어지는지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손상된 신경이 스스로 통증을 만든다
말초신경이 손상되면 처음엔 단순히 신호 전달이 느려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집니다.
손상된 신경 자체가 아무 자극 없이도 전기 신호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이걸 이소성 발화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신경은 외부 자극에 반응해서만 신호를 보내는데, 손상된 신경은 24시간 스스로 신호를 쏘아댑니다.
이게 저림과 타는 듯한 통증이 왜 쉬지 않는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에 더해 신경 섬유를 감싸는 보호막이 벗겨지면, 신호가 이웃 신경으로 번져 자극이 증폭됩니다. 원래 발가락 끝에서 시작된 이상 신호가 발 전체, 종아리까지 퍼져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말초에서 시작된 이상이 뇌까지 바꿔놓는다
진통제가 효과가 없는 핵심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말초에서 비정상적인 통증 신호가 오래 들어오면, 척수와 뇌의 통증 처리 회로 자체가 변합니다.
이걸 중추 감작이라고 합니다.
한번 중추 감작이 일어나면, 말초의 신호를 아무리 차단해도 뇌는 이미 통증을 증폭시키는 상태로 굳어진 겁니다.
약이 말초 수용체를 억제하더라도, 이미 바뀐 중추 회로는 그대로입니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크게 줄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더 오래 방치할수록 이 중추 감작은 더 깊어지고, 되돌리기가 어려워집니다.
자율신경이 함께 무너지면서 신경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말초신경병증을 감각 통증의 문제로만 보면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칩니다.
말초신경에는 운동신경, 감각신경과 함께 자율신경이 같이 다닙니다.
자율신경은 말초 혈관의 수축과 이완을 조절합니다. 이게 무너지면 신경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미세혈관 흐름이 불안정해집니다.
신경이 제대로 회복하려면 혈류가 필요한데, 자율신경이 손상된 상태에서는 그 혈류 자체가 들쭉날쭉해집니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땀 조절이 안 되고, 밤에 더 심해지는 증상들이 단순한 부작용이 아닌 이유입니다. 자율신경이 함께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 상태에서 감각 통증만 억제하는 약을 쓰면, 신경이 실제로 회복될 환경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존 치료가 놓치는 지점
말초신경병증에 흔히 쓰는 접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통증을 줄이는 약, 그리고 원인 질환 관리입니다.
둘 다 필요하지만, 이 두 가지만으로 증상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중추 감작이 진행됐다면 말초 차단제로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자율신경 손상이 진행 중이라면 미세혈관 환경이 계속 나빠집니다.
통증 신호를 만드는 말초, 그 신호를 증폭시키는 중추, 신경이 회복될 환경을 조성하는 혈관과 자율신경, 이 세 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입니다.
말초 하나만 건드리면 나머지 두 개가 다시 발목을 잡습니다.
결국 어디서 무너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저림과 통증이 오래됐을수록, 약을 먹어도 별로 안 들을수록, 상태는 말초에서 중추로 번진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서 문제가 시작됐는지보다, 지금 어디까지 번졌는지를 보는 게 치료의 출발점이 됩니다.
중추 감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자율신경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 미세혈관 허혈은 어떤 상태인지.
이 각각의 상태를 파악하지 않으면, 약 용량을 올려도 결과는 비슷하게 반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