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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후 손 안 쥐어지는 미세운동 재활

변성범 원장
변성범 원장
한의학박사 · 한방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원장 소개 →

뇌졸중 이후 많은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손 기능의 회복입니다.

걷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고,
때로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손의 근력 자체는 어느 정도 회복됐는데도
쥐고, 집고, 돌리는 미세한 움직임은 따로 남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게 왜 그런 건지,
오늘은 그 이유부터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손이 말을 안 듣는 건, 근육이 아니라 ‘신호 경로’의 문제입니다

뇌졸중은 뇌의 특정 부위에 혈액 공급이 끊기면서
그 부위가 담당하던 기능이 멈추는 사건입니다.

상지, 특히 손의 미세운동을
가장 정밀하게 조율하는 영역은
대뇌 피질의 일차 운동 영역과
그것에서 척수로 내려가는 피질척수로입니다.

이 경로가 손상되면, 근육은 살아 있어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구부리는 단순한 동작도
수십 개의 근육이 정밀하게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피질에서 내려오는 신호가 끊기거나 왜곡되면,
그 협력 자체가 무너지는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근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근육들 사이의 ‘타이밍’과 ‘순서’가 깨진 상태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악력 측정기에서는 꽤 정상에 가까운 수치가 나오면서도
젓가락질이 안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손은 왜 다른 부위보다 더 오래 걸리는 걸까요

발이나 무릎보다 손이 더 늦게 돌아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손의 미세운동은 뇌에서 가장 많은 피질 면적을 차지하는 기능 중 하나입니다.

운동 피질 지도, 이른바 ‘호문쿨루스’를 보면
손과 손가락이 차지하는 영역이 몸통이나 다리보다
훨씬 크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곧, 손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신경 연결이
다른 부위보다 훨씬 많고 복잡하다는 뜻이죠.

그래서 뇌졸중으로 손 담당 피질이 손상됐을 때,
회복에 필요한 신경 재배선의 양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뇌는 원래 경로가 손상되면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이 신경가소성이 손 기능 회복의 핵심 열쇠입니다.

그런데 신경가소성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복적이고 목적 있는 움직임이 있어야
뇌가 그 신호를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새 경로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아무 의도 없이 움직이는 것과,
뭔가를 집으려는 의도를 갖고 움직이는 것은
뇌에서 전혀 다르게 처리됩니다.

실제로 목표 지향적 움직임이
단순 반복 동작보다 신경가소성을 훨씬 강하게 자극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손을 쓰는 ‘시도’ 자체가
이미 뇌에 신호를 보내는 행위라는 겁니다.

움직임이 전혀 없어도,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도만으로도
운동 피질이 부분적으로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안 움직여지니까 나중에 연습해야지”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시도 자체를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회복을 방해하는 건 무엇인가

신경가소성이 작동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뇌가 그 신호를 학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이 간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수면과 스트레스 호르몬입니다.

수면 중에 뇌는 낮 동안 받은 운동 자극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고
신경 연결을 실제로 강화합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그날의 재활 노력이
절반도 신경망으로 굳어지지 못한 채 흩어질 수 있죠.

스트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졸중 이후 기능 상실에 대한 불안, 두려움, 좌절감은
코르티솔 수치를 높이고,
높은 코르티솔은 신경가소성에 관여하는 해마와 전두엽의 활성을 억제합니다.

즉, 심리적 상태가 재활의 속도에 직접 개입하는 겁니다.

또 하나 빠뜨리기 쉬운 것이 있는데,
바로 ‘학습된 비사용’입니다.

손이 잘 안 되니 자꾸 반대쪽 손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뇌는 손상된 쪽 손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해
해당 피질 영역이 다른 기능에 재배치되기 시작합니다.

쓰지 않을수록 뇌가 그 손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겁니다.

이것이 재활에서 강제 유도 운동치료 같은 접근이
의미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회복은 근육이 아닌 뇌에서 시작됩니다

손 기능 회복은 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가 새 경로를 만들어내는 신경가소성,
그 가소성이 작동할 수 있는 수면과 심리적 상태,
그리고 손을 계속 쓰려는 의도적인 시도,
이 세 가지가 함께 맞물릴 때 회복이 일어납니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 두 가지가 제 기능을 못합니다.

뇌졸중 후 재활에서 흔히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안 좋아진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신경가소성 연구들은 그 통념을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충분한 자극과 조건이 갖춰진다면,
뇌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변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손이 아직 안 쥐어진다면,
그건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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