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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기억력 공부한 게 기억이 안 난다는데 수면 부족 때문만은 아닌가요

변성범 원장
변성범 원장
한의학박사 · 한방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원장 소개 →

분명히 공부했는데, 시험지 앞에 앉으면 하얗게 지워진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경험.
고등학생이라면 한 번쯤 겪어본 일일 겁니다.

많은 경우 “잠이 부족해서”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물론 수면은 기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죠.
그런데 충분히 자도 기억이 여전히 잘 안 된다면,
거기엔 수면 이외의 다른 요소가 함께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수면 부족이 단독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겁니다.
고등학생의 일상에서 수면 부족은 대부분 만성 스트레스와 함께 옵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겹칠 때, 기억이 굳어지지 않는 메커니즘은 훨씬 복잡해집니다.

기억은 잠자는 동안 완성된다

낮 동안 공부한 내용은 곧바로 장기기억이 되지 않습니다.
뇌 안쪽의 해마라는 구조물이 정보를 임시로 붙잡아 두고,
수면 중에 대뇌피질로 옮겨가며 장기기억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을 ‘기억 공고화’라고 부릅니다.

특히 깊은 수면 단계와 꿈을 꾸는 수면 단계가
이 공고화 작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이 두 단계 모두 짧아지고,
기억이 장기로 넘어가기 전에 잘려나가는 셈이 됩니다.

실제로 하룻밤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면
학습 내용의 기억 정착률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해마는 잠을 자는 동안 그날 입력된 정보를 다시 재생하며 분류하고 연결합니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공부한 내용은 말 그대로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해마 자체가 흔들린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등장합니다.
수면 부족만 있을 때와,
만성 스트레스가 함께 있을 때는 뇌에 가해지는 영향이 다릅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됩니다.
코르티솔이 장기간 높으면 해마의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새로운 신경 연결이 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해마는 기억을 임시로 저장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처음 받아들이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이 입구가 흔들리면 공부한 내용이 처음부터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수면을 취해도 재생할 정보 자체가 부실하게 저장된 겁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코르티솔이 높은 상태에서는 깊은 수면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자도 자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 쉽게 깨는 것, 아침에도 개운하지 않은 것들이
이 맥락에서 나타납니다.
즉, 스트레스는 수면의 질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수면은 다시 스트레스 반응을 강화합니다.

해마 입장에서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정보가 처음 들어올 때도 불완전하고,
그것을 공고화할 수면도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공부한 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단순한 집중력 부족이 아닐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고등학생의 기억력 문제는
수면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성 스트레스가 유지되는 한, 수면의 구조 자체가 기억 공고화에
충분하지 않은 형태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공부량보다 뇌의 상태가 먼저입니다

기억은 의지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잠자는 동안 그것을 다시 정리하고 연결하는
생리적인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공부한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뇌가 기억을 굳힐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신호일 수 있습니다.

수면 시간을 늘리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성적인 긴장과 스트레스가 함께 있는 상태라면,
수면의 양보다 수면의 구조가 더 핵심적인 문제가 됩니다.
코르티솔이 높은 채로 눈을 감아도,
해마가 필요로 하는 깊은 수면 단계는 충분히 확보되지 않습니다.

뇌는 쉬어야 기억합니다.
그 쉬는 과정이 방해받고 있다면,
공부 방법을 바꾸는 것보다 뇌가 쉴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부한 내용이 기억이 안 나는 이유가 뭔가요?

A. 학습한 내용은 수면 중에 해마에서 대뇌피질로 옮겨지며 장기기억으로 굳어집니다. 수면이 부족하거나 수면의 질이 낮으면 이 공고화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공부한 내용이 휘발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스트레스가 기억력에도 영향을 주나요?

A.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되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세포 연결이 약해집니다. 또한 코르티솔이 높으면 깊은 수면에 진입하기 어려워져 기억 공고화 자체가 방해받게 됩니다.

Q. 잠을 많이 자도 기억력이 나쁜 이유는 뭔가요?

A. 수면 시간보다 수면의 구조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만성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있는 상태에서는 자는 동안에도 깊은 수면 단계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기억 공고화에 필요한 과정이 생략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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