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 하면 대부분 떨림이나 경직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정작 환자 본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몸이 느려지는 것만큼이나
의욕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감각입니다.
가족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몸이 불편하니까 우울한 거 아닐까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킨슨에서 나타나는 우울과 무기력은
심리적 반응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뇌의 구조부터 살펴보면,
이해가 훨씬 빠릅니다.
파킨슨은 운동 문제가 아니라 신경전달 문제입니다
파킨슨은 뇌의 흑질이라는 부위에서
도파민을 만드는 신경세포가 점차 줄어드는 병입니다.
도파민이 줄어들면 몸이 굳고 느려지죠.
이건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도파민은 운동에만 관여하는 게 아닙니다.
도파민은 동기, 보상, 기대감을 담당하는
핵심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
해냈을 때 느끼는 뿌듯함,
내일을 기대하는 감각.
이 모든 것이 도파민 회로와 연결돼 있습니다.
파킨슨 환자에게서 도파민이 줄어든다는 건
운동 기능만 손상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의욕을 만들어내는 뇌의 기반 자체가
함께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파킨슨 환자의 40~50% 이상에서
우울 증상이 동반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수치는 다른 만성 신체 질환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은 편입니다.
우울이 병을 앓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파킨슨이라는 병 자체의 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기력은 왜 우울보다 더 먼저 오기도 할까요
흥미로운 건 순서입니다.
파킨슨 환자 중 일부는
공식적인 우울 진단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무기력과 의욕 저하를 심하게 호소합니다.
이걸 무감동, 또는 아파시라고 부릅니다.
슬프다는 감정은 없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입니다.
이 무감동은 도파민 회로 중에서도
특히 앞쪽 뇌, 전두엽 방향의 연결이 약해질 때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뇌가 ‘하고 싶다’는 신호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인 겁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 스스로도 혼란스럽습니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다 귀찮아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우울한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과 무기력을 분리해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같은 도파민 문제에서 출발하더라도
어느 회로가 더 먼저, 얼마나 손상됐느냐에 따라
증상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무기력이 우울보다 먼저 오는 경우도 많고,
둘이 함께 오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 없이 무기력만 남기도 합니다.
이걸 “심리 문제”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버리면
뭔가 중요한 걸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파킨슨에서 도파민 이외에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신경계도 함께 손상됩니다.
슬픔, 불안, 수면 문제까지 겹치는 건
이 세 가지 신경전달 체계가
동시에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도파민 부족”이라는 한 줄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몸과 마음이 같은 뿌리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
파킨슨의 비운동 증상은 오랫동안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운동 증상이 눈에 보이고, 측정이 되고,
“파킨슨답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울, 무기력, 의욕 저하는
“마음의 문제”로 취급되거나
병 때문에 당연히 겪는 일로 가볍게 넘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증상들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뇌의 신경전달 체계가 손상되면서
몸과 감정이 같은 뿌리에서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파킨슨을 이해할 때
“손이 떨린다”는 사실만큼이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는 신호를
함께 진지하게 봐야 합니다.
몸의 증상과 마음의 증상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병이 서로 다른 얼굴로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