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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 때문에 약 먹는데 감정이 무뎌진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변성범 원장
변성범 원장
한의학박사 · 한방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원장 소개 →

슬프지 않은데 기쁘지도 않다.
눈물이 줄었는데 웃음도 함께 사라졌다.

우울증 약을 먹고 나서 이런 감각을 경험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약이 잘 듣는 건지, 아니면 뭔가 잘못된 건지” 헷갈리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옵니다.

이 현상은 의학적으로 이름이 있고,
생기는 이유도 비교적 잘 설명됩니다.
감정이 무뎌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착각이 아닙니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이 같은 경로 위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울증 약은 어떻게 작동하고, 왜 감정을 함께 건드리게 될까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항우울제는
뇌 안에서 세로토닌이 재흡수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세로토닌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 공간에 분비되었다가
다시 흡수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 재흡수를 억제하면 두 세포 사이에 세로토닌이 더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그 결과, 뇌 전체의 세로토닌 활성이 높아집니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이 작용이 감정의 바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과도하게 무너지는 기분을 어느 정도 잡아주는 거죠.

그런데 세로토닌은 뇌의 모든 영역에 고르게 영향을 미칩니다.
기쁨, 슬픔, 불안, 흥분 같은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 모두에 말이죠.

그래서 한쪽을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쪽 감정도 함께 눌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걸 흔히 “정서 둔마”라고 부릅니다.

전전두엽의 과억제, 그리고 감정이 납처럼 무거워지는 이유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판단하는 영역이 전전두엽입니다.
이 영역은 세로토닌 신호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가면
전전두엽은 아래쪽 감정 중추에서 올라오는 신호들을 적극적으로 억제합니다.
불안과 충동, 과도한 슬픔을 제동 걸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이 억제가 지나치게 강해질 때입니다.

억제 신호가 과해지면
슬픔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기쁨, 설렘, 흥미, 연결감 같은 감정들도 함께 억눌립니다.

감정의 진폭 자체가 줄어들면서
뭔가를 느끼는 능력 자체가 흐릿해지는 거죠.

이런 현상은 복용 초기보다는
몇 달이 지난 뒤에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 자체에 몸이 적응하면서 세로토닌 수용체 수가 줄어드는 변화도 영향을 줍니다.

즉, 처음엔 괜찮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이것도 하나의 의미 있는 신호입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이 있습니다.
전전두엽이 과도하게 억제되면
동기, 집중력, 의욕 같은 기능도 같이 낮아집니다.

“우울하진 않은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거나
“다 괜찮은 것 같은데 무기력하다”는 상태가
바로 이 경로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감정이 돌아온다는 것,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약을 멈추면 감정이 돌아올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로토닌 경로가 오래 자극된 뒤에는
수용체 자체가 변화되어 있어서
약을 끊는다고 곧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정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데는
세로토닌 외의 다른 뇌 신호 경로들도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특히 도파민 경로는 동기와 기쁨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세로토닌이 안정적인 감정의 토대라면,
도파민은 그 위에서 생동감을 만들어내는 연료 같은 것입니다.

정서 둔마 상태에서는 이 두 경로의 균형이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것, 특정 목표를 향한 작은 행동들,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
단순히 기분 전환 이상의 생리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 활동들은 도파민 경로를 직접 자극하고,
전전두엽의 기능 회복에도 영향을 줍니다.

감정 회복은 약의 용량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뇌 안의 여러 경로가 함께 움직여야 하고,
그 경로들은 생활 안에서의 자극과 경험에 의해
조금씩 되살아납니다.

약이 만들어준 안정된 바닥 위에서
다른 무언가가 함께 작동해야 감정이 다시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겁니다.

감정이 무뎌진 것 같다는 느낌은,
약이 실패한 신호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뀌었다는 신호일 수는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우울증 약 먹고 감정이 무뎌지는 게 정상인가요?

A. 정서 둔마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들 중 일부에서 나타나는 알려진 현상입니다. 세로토닌 활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슬픔뿐 아니라 기쁨 같은 긍정적 감정도 함께 억제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착각이 아니라 뇌의 변화에서 비롯된 반응입니다.

Q. 항우울제를 오래 먹으면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영구적으로 줄어드나요?

A. 대부분의 경우 영구적인 변화는 아닙니다. 다만 세로토닌 수용체가 약에 적응하면서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약을 끊는다고 곧바로 원래 감정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파민 경로를 함께 자극하는 활동들이 감정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Q. 우울증 약을 먹는데 의욕이 없고 무기력한 이유가 뭔가요?

A. 전전두엽이 세로토닌에 의해 과도하게 억제되면 감정뿐 아니라 동기와 집중력도 함께 낮아질 수 있습니다. 우울한 감정은 줄었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상태가 바로 이 경로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이는 세로토닌 외에 도파민 경로의 균형이 어긋나 있을 때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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