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저립니다.
그런데 발도 저립니다.
손목터널증후군이라고 들었는데,
왜 발은 멀쩡하지 않을까요?
저림은 하나의 증상이지만,
그 뒤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어디서 시작됐느냐,
어떤 패턴으로 퍼지느냐에 따라
몸이 보내는 신호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손목에서 신경이 눌리면 어떤 저림이 생기나
손목 안쪽에는 뼈와 인대로 둘러싸인
좁은 통로가 있습니다.
이 통로를 아홉 개의 힘줄과
하나의 신경이 함께 통과하는데,
이 신경이 바로 손 감각을 담당하는
정중신경입니다.
이 통로 안의 압력이 높아지면
신경이 눌리고,
신경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면서
저림이 시작됩니다.
특징적인 점은 저림의 범위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엄지, 검지, 중지, 그리고 약지의 절반.
이 범위 안에서만 저리고,
새끼손가락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신경 하나가 담당하는 구역이
그만큼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야간에 증상이 심해지는 것도 특징입니다.
자면서 손목이 구부러진 자세를 유지하면
통로 내부 압력이 더 올라가고,
그 자극이 쌓여 새벽에 손이 저려
잠을 깨는 일이 반복됩니다.
손을 아래로 흔들었을 때
저림이 잠깐 풀리는 느낌이 든다면,
이건 압박에 의한 혈류 회복 반응입니다.
발도 함께 저리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손목의 문제는 손에서 끝납니다.
발까지 저리다면
손목이 아니라 신경 자체의 문제를
봐야 합니다.
말초신경은 척수에서 뻗어나와
손끝, 발끝까지 이어지는
긴 전선 같은 구조입니다.
이 신경이 전신적으로 손상되는 상태를
말초신경병증이라고 합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혈당 조절 이상입니다.
장기간 높은 혈당 환경에 노출된
신경 세포는 내부 대사가 망가지고,
신경을 감싸는 보호막이
서서히 닳아 없어집니다.
이때 나타나는 저림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신경의 길이가 길수록 먼저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발끝부터 시작해
발목, 종아리로 올라오고,
시간이 지나면 손끝도 함께 저려옵니다.
의학적으로는 ‘장갑-양말 분포’라고
표현합니다.
손목터널증후군처럼
특정 손가락만 저린 게 아니라,
발과 손 전체가 대칭적으로
무감각해지거나 타는 듯한 느낌이
지속됩니다.
밤에 심해지는 건 비슷하지만,
손을 흔들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혈당뿐 아니라 비타민 B12 부족,
장기 음주, 자가면역 이상도
같은 방식으로 신경을 서서히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이 손상은 방치할수록
되돌리기 어려워집니다.
손목터널증후군으로만 보고 치료를 받는 동안,
전신 신경 손상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림의 원인을 정확히 구분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증상이 비슷해도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손목터널증후군과 말초신경병증은
저림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혼동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 상태에서 실제로
신경에 벌어지는 일은
전혀 다른 경로를 밟습니다.
손목에서는 외부 압력으로
신경이 눌립니다.
구조적 문제입니다.
압박이 풀리면 신경 기능도 회복됩니다.
말초신경병증에서는
신경 세포 내부가 망가집니다.
높은 혈당이 신경 내 에너지 대사를 교란하고,
산화 스트레스가 신경 세포막을 손상시킵니다.
보호막인 수초가 벗겨지면
신호 전달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감각 자체가 사라집니다.
구조적 압박은 제거하면 개선되지만,
대사로 인한 신경 손상은
원인 조절 없이는 계속 진행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가지가 동시에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겁니다.
당뇨가 있는 사람은
수근관의 조직 변성이 더 잘 생기고,
말초신경이 이미 손상된 상태에서
국소 압박까지 더해지면
증상이 훨씬 심하게 나타납니다.
이 경우 손목 치료만으로는
저림이 잡히지 않습니다.
혈당 관리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전신적인 원인을 찾지 않고
혈액순환 개선제만 먹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목의 압박이 해결되지 않으니
증상은 그대로입니다.
저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한쪽인지 양쪽인지,
발까지 내려가는지,
언제 심해지는지.
이 질문들이 방향을 갈라놓습니다.
같은 저림처럼 보여도,
그 안에 다른 문제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