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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 후 피로감이 너무 심한데 MRI 검사엔 이상 없다고 하네요

변성범 원장
변성범 원장
한의학박사 · 한방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원장 소개 →

뇌경색을 겪고 나서 회복이 됐다는 말을 들었는데,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이겁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완전히 방전되는 것 같아요.”
“MRI 찍어보니 이상 없다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건지 모르겠어요.”

검사 결과가 깨끗하다는 건 좋은 신호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당신의 피로는 근거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뇌경색 후 피로는 영상 검사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그게 이 피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뇌졸중 후 피로, 영어로는 ‘post-stroke fatigue’라고 부릅니다.
뇌졸중 생존자의 절반 이상이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발병 후 수년이 지나도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검사엔 이상 없다”는 말을 들으면
당사자는 자신의 피로가 마음의 문제인지,
아니면 의지가 약한 탓인지 혼란스러워지곤 합니다.

뇌가 손상된 뒤, 남은 뇌는 두 배로 일한다

뇌경색은 특정 부위에 혈류가 막혀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질환입니다.
운이 좋으면 손상 범위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손상되지 않은 나머지 뇌 조직이 빠져나간 자리를 보충하려 합니다.
신경과학에서는 이것을 ‘가소성’이라 부릅니다.

뇌는 새로운 신경 연결을 만들고,
기존 경로를 재배선하면서 기능을 복구하려 합니다.
이 과정은 분명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를 씁니다.
뇌 재배선은 조용히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대사적으로 매우 비용이 큰 작업입니다.

포도당 소비가 늘어나고,
미토콘드리아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한 번 허혈 손상을 겪은 뇌는
에너지 생산 효율 자체가 저하된 상태입니다.

즉, 써야 할 에너지는 늘어났는데 만들 수 있는 에너지는 줄어든 상황이 됩니다.
이것이 뇌경색 후 피로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MRI에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구조적 손상이 아니라 대사적 불균형이기 때문입니다.
뇌의 형태는 회복됐더라도, 에너지 대사 방식은 달라진 겁니다.

감각이 예민해진 뇌, 더 적은 자극에도 방전된다

뇌경색 후 피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중추 감작입니다.

중추 감작이란, 뇌와 척수를 포함한 중추신경계가
외부 자극에 비정상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뇌 손상 이후 염증 반응이 지속되면,
신경 회로의 흥분 역치가 낮아집니다.

쉽게 말해,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던 자극들이
이제는 뇌 입장에서 “과부하 신호”로 인식된다는 겁니다.

소음, 빛, 대화, 집중을 요구하는 작업.
이런 것들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냥 일상이지만,
중추 감작이 있는 뇌에게는 상당한 처리 비용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뇌경색 후 피로는 신체 활동 없이도 발생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TV를 봤을 뿐인데 지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추 감작은 또 다른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수면입니다.

뇌 손상 이후 수면 구조가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깊은 수면 단계가 줄어들고, 뇌가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합니다.

충분히 자도 피곤한 이유는 수면의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뇌는 깊은 수면 중에 대사 노폐물을 제거하고
신경 회로를 정비하는데,
이 기회가 줄어들면 피로는 축적되기만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율신경계 문제가 더해집니다.
뇌경색 부위에 따라 자율신경 조절 기능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박수, 혈압, 체온 조절이 불안정해지면
몸은 기본적인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에너지를 더 씁니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끊임없이 일하고 있는 상태.
에너지가 빠르게 소진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검사가 정상이어도, 몸이 보내는 신호는 정상이 아닙니다

뇌경색 후 피로를 두고 “의지의 문제”라고 보는 시선은
이 피로의 기전을 모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것은 게으름이나 우울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우울감이 피로를 악화시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항우울제만으로 피로가 해결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뇌경색 후 피로는 에너지 대사의 문제,
중추 감작으로 인한 과부하,
수면 구조의 변화,
자율신경 불안정이 동시에 얽혀 있는 상태입니다.

중요한 건 이 피로가 영구적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뇌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대사 환경을 바꾸고, 신경계의 흥분 상태를 낮추는 방향으로
접근하면 피로의 강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려면 “MRI상 이상 없음”이라는 한 마디에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
그것이 뇌경색 후 피로를 다루는 첫 번째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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