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저리면 많은 분들이 먼저 당뇨를 의심합니다.
물론 당뇨는 말초신경병증의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막상 혈당 수치를 확인해도 정상 범위인 경우가 꽤 많습니다.
당뇨가 없는데도 손발저림이 지속된다면,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말초신경이 손상되는 방식
말초신경은 뇌와 척수를 제외한 모든 신경을 말합니다.
손끝, 발끝까지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이 신경들은
매우 얇고 긴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그만큼 외부 자극이나 내부 환경 변화에 민감합니다.
신경이 손상되면 저림, 통증, 감각 둔화, 타는 듯한 느낌이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신경 손상의 핵심 기전 중 하나는 ‘에너지 공급 차단’입니다.
신경세포는 포도당과 산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기능을 유지합니다.
이 공급이 끊기거나 불안정해지면,
신경 자체는 살아 있어도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가 됩니다.
당뇨에서 신경 손상이 일어나는 이유도 결국 고혈당이 신경 주변 혈관을 망가뜨려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즉, 핵심은 ‘당뇨’라는 병명이 아니라
‘신경에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느냐’의 문제입니다.
당뇨 없이도 말초신경이 망가지는 이유
가장 흔하게 놓치는 원인 중 하나가 영양소 결핍입니다.
비타민 B12는 신경 수초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입니다.
수초는 신경 섬유를 감싸는 절연체 같은 구조인데,
이것이 손상되면 전기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채식 위주 식단, 위장 흡수 기능 저하,
특정 약물의 장기 복용은
B12 수치를 서서히 떨어뜨립니다.
문제는 B12 결핍이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갑상선 기능 저하입니다.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면 전신 대사가 느려집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에 점액성 물질이 축적되고,
말초신경을 물리적으로 압박하거나
신경 자체의 대사 속도를 떨어뜨립니다.
손발저림이 있으면서 추위를 잘 타고, 쉽게 피로하다면
갑상선 기능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만성 음주입니다.
알코올은 신경세포에 직접 독성을 가질 뿐 아니라,
비타민 B군의 흡수와 활성화를 방해합니다.
알코올성 말초신경병증은
특히 발바닥의 작열감이나 통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금주 후에도 회복이 더딘 특징이 있습니다.
네 번째로, 자가면역 반응이 신경을 직접 공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의 면역계가 자기 신경 조직을 이물질로 오인해
공격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유형은 저림이 갑자기 시작되거나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다른 원인과는 다른 경과를 보입니다.
하나의 숫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유
혈당 수치 하나만 정상이라고 해서
손발저림의 원인이 없다고 결론 내리기 어렵습니다.
말초신경병증은 대부분 단일 원인이 아닌
여러 요소가 겹쳐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혈당이 경계선에 있으면서
B12 수치도 낮고, 갑상선 기능도 떨어져 있다면
어느 하나만 보정해서는 증상이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신경은 에너지, 영양소, 호르몬 환경,
면역 반응 모두의 영향을 받는 조직입니다.
그래서 손발저림을 볼 때는
혈당만이 아니라 이 요소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함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림이 오래됐다고 해서 그냥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말초신경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증상이 가볍더라도 오래 지속된다면, 원인을 폭넓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발저림은 몸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가 정확히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하나의 수치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시각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