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관리라고 하면
대부분 혈당 조절을 먼저 떠올립니다.
약을 먹고, 운동하고, 식이를 조절해서
수치를 정상 범위 안에 두는 것.
그런데 약을 꾸준히 먹어도
점점 용량이 늘어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혈당은 관리하고 있는데
왜 상황이 나빠질까요.
답은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
췌장 베타세포에 있습니다.
인슐린 저항성만 문제일까
당뇨병 초기에는
인슐린 저항성이 주된 문제입니다.
세포들이 인슐린에 반응하지 않으니
혈당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습니다.
이때 췌장은 더 많은 인슐린을 만들어서
저항성을 뚫으려고 합니다.
실제로 당뇨 초기에는
인슐린 수치가 정상보다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췌장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뜻이죠.
문제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입니다.
베타세포는 쉬지 않고 인슐린을 찍어내느라
점점 지쳐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인슐린 분비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베타세포가 지쳐가는 과정
베타세포 안에는 인슐린을 만드는 공장이 있습니다.
이 공장이 풀가동되면
세포 안에 노폐물과 손상된 부품이 쌓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세포는 자가포식이라는 청소 시스템을 가동해서
이런 것들을 정리합니다.
자가포식은 세포가 스스로를 리모델링하는 과정입니다.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를 분해하고,
잘못 접힌 단백질을 처리하고,
세포의 효율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
이 청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환경에서는
자가포식 신호가 억제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타세포 안에
손상된 구조물이 계속 쌓입니다.
왜 약만으로는 한계가 있나
대부분의 당뇨 약물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거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거나.
그런데 베타세포가 이미 지쳐있는 상태에서
분비 촉진 약물을 쓰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혈당은 내려갑니다.
하지만 베타세포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일을 강요받는 셈입니다.
이미 손상이 쌓이고 있는 세포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 채찍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베타세포의 수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어떤 약을 써도 효과가 떨어지고,
결국 인슐린 주사가 필요해집니다.
고혈당이 세포를 망가뜨리는 방식
혈당이 높으면
몸 전체에 활성산소가 늘어납니다.
베타세포는 특히 산화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다른 세포들보다
항산화 방어 시스템이 약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고혈당 → 활성산소 증가 → 베타세포 손상
이 경로가 계속 반복됩니다.
여기에 인슐린 과분비로 인한 피로까지 더해지면
베타세포는 이중으로 공격받는 상황이 됩니다.
자가포식이 작동해야 손상을 수리할 수 있는데,
고혈당 환경에서는 자가포식도 억제됩니다.
수리는 안 되고 손상은 쌓이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베타세포의 회복 가능성
다행히 베타세포는
어느 정도까지는 회복 능력이 있습니다.
핵심은 세포가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인슐린 분비 부담을 줄여주면
베타세포는 자가포식을 다시 가동할 수 있습니다.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를 정리하고,
기능을 회복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간헐적 단식이나 저탄수화물 식이가
베타세포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혈당 부하가 줄면 인슐린 분비 요구가 줄고,
자가포식이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혈당 숫자 너머를 보는 것
당뇨 관리의 목표가
단순히 혈당 수치를 낮추는 것이라면
어떤 방법을 쓰든 숫자만 내리면 됩니다.
하지만 베타세포가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는지,
세포의 자가 수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는
혈당 수치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혈당 수치라도
베타세포가 여유 있게 일하고 있는 상태와
한계까지 쥐어짜고 있는 상태는 다릅니다.
후자는 지금 당장 수치가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
베타세포가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게 당뇨병을 다르게 보는 시작점입니다.